지구마을 딴 가족

🇹🇷 튀르키예야말로 현상 유지(status quo)가 답이다 – 2

닥터 케디 2023. 8. 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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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에서 매년 8월 30일은 '승전기념일'이다. 무슨 전쟁? 그리스와 한판 싸웠다. 그런데 이 전쟁을 설명하려면, 일단 제1차세계대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제1차세계대전 직전 1913년 오스만제국 지도를 보자 (아래 사진). 지금 튀르키예 지역과 남쪽에 아랍 지역들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오스만제국은 독일 쪽으로 줄을 잘못 섰다가 패전국이 됐다. 독일•오스트리아처럼 승전국에 점령당한 후 땅을 뺏길 각오를 해야 했다. 이럴 때 제국을 지키겠다고 들고일어난 쪽은 민초들이었다. 우리로 치면 의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오스만제국 술탄은 수도 이스탄불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었느냐? 승전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의병을 토벌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 임무를 맡은 사람이 간도 크게 술탄의 명을 거역하고 의병에 합류해서 지도자로 변신했다. 누구? 무스타파 케말! 그렇게 무스타파 케말은 술탄의 역적이 되었다.


술탄이 어리바리하니 무스타파 케말 쪽 인사들이 제국의회에서 국민헌장/서약(Misak-ı Milli)을 발표하고 불가분 한 오스만제국 영토를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아래 사진 분홍색).

1920년 2월 12일, Misak-ı Milli


1913년 영토와 비교했을 때 아랍 지역을 거의 상실하더라도 여기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상징적인 외침이었다. 당연히 승전국이 이걸 인정할 리 없었고, 바로 탄압에 들어갔다.

결국 무스타파 케말은 새로 정부를 세웠다. 어디에? 앙카라! 조금이라도 국권을 찾으려고 민초들이 풍찬노숙하며 싸우고 있을 때 1920년 이스탄불 술탄이 세브르조약을 체결했다 (아래 사진 주황색).

1920년 8월 10일, 세브르조약


이스탄불과 보스포루스 해협을 국제관리지역으로 넘기고, 그냥 나머지는 영국•프랑스•이탈리아•그리스•아르메니아에 다 내줬다고 보면 된다. 엄청난 불평등 조약이었다. 한마디로 술탄이 자기 하나 살자고 나라를 팔았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무스타파 케말 앙카라 정부는 세브르조약을 폐기하고 외세를 몰아내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무스타파 케말이 탁월한 외교적•군사적 수완을 발휘했다.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으나 소련의 지원을 받으면서 동부에서 아르메니아를 정리하고, 남부에서 프랑스•이탈리아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본진 유럽에서 힘을 너무 뺀 영국•프랑스•이탈리아는 이제 오스만제국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그런데 서부를 점령한 그리스는 정말 진지했다. 아래 지도처럼 고토를 회복해서 과거 영광을 재현하고 싶었다.


따라서 세브르조약으로 얻은 땅에 만족하지 않고 내륙으로 침공을 감행했다. 아래 지도 짙은 파란색이 세브르조약에 따라 그리스가 점령한 지역이고, 옅은 파란색이 그리스가 공세를 전개한 지역이다.  


무스타파 케말 정부가 있는 앙카라 앞까지 진격했다. 당시 비행기•대포 숫자를 따져보면, 그리스 쪽 전력이 무스타파 케말의 앙카라 정부보다 훨씬 우세했다. 그런데 딱 봐도 전역이 너무 넓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1922년 8월 30일, 그리스군은 무스타파 케말과 이스메트에게 둠르프나르(Dumlupınar)에서 박살이 났다. 그래서 '승전기념일'이 8월 30일이다.

(좌) 무스타파 케말, (우) 이스메트


결국 아래 지도처럼 그리스군은 1달도 안 돼서 본전도 못 건지고 바다로 쫓겨났다.


무스타파 케말의 앙카라 정부가 승전국 자격을 얻었다. 따라서 이스탄불 술탄이 맺은 세브르 조약을 폐기하고 승전 조약을 다시 맺었다. 바로 그게 내가 계속 강조하는 1923년 7월 24일 체결한 '로잔 조약'이다.

오스만제국 술탄이 맺은 세브르조약과 무스타파 케말의 앙카라 정부가 맺은 로잔조약이 승인한 영토 크기를 비교해 보면 로잔조약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딱 봐도 빨간색이 주황색보다 훨씬 넓다. 아나톨리아 반도를 수복했다 (아래 지도).

세브르조약 주황색
로잔조약 빨간색

이렇게 해서 튀르크인(Türk)이 사는 지역(-iye), 튀르키예(Türkiye)공화국이 탄생했다. 오스만제국은? 1922년 앙카라에서 의회가 술탄제를 폐지하면서 그냥 그렇게 망했다. 이스탄불의 술탄은 짐 싸서 영국 배 타고 몰타로 도망갔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아래 사진의 대한제국을 계승하지 않은 공화국인 것처럼 튀르키예공화국은 오스만제국을 계승한 나라가 아니다.


왜 튀르키예 리라에 오스만제국 술탄들 얼굴이 없는지, 왜 수도가 이스탄불이 아니라 앙카라인지 이런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그리고 1923년부터 1950년까지는 무스타파 케말과 그 후계자 이스메트가 서유럽 근대 국민국가를 모델로 헌법을 만들고 종교보다 과학기술을 강조하며 세속화•서구화를 추진했다. 이 시기를 '공화국 시기(1923–1950)'라고 한다.

그런데 로잔조약이 굴욕이었고, 무스타파 케말이 서양 열강 눈치를 보느라 땅을 더 빼앗겼다는 주장이 있다. 근거라고 들이미는 게 아래 지도다.


로잔조약 전에 영토가 위와 같았는데 무스타파 케말이 로잔조약이 맺는 바람에 아래와 같이 영토가 줄어들었다고 우긴다. 심지어 무스타파 케말이 이슬람 세계를 약화시키려는 서양 열강과 유대인의 사주를 받은 스파이라는 설까지 있다.

오스만제국 안에서 종교 이슬람을 중심으로 튀르크인, 아랍인, 쿠르드인이 형제처럼 사이좋게 잘 지냈는데 무스타파 케말이 튀르크인 국가를 만들면서 중동과 튀르키예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단다.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지난번에 설명했다 (아래 링크).
https://m.blog.naver.com/drkedy/223182749824

🇹🇷 오스만제국은 역사 속에서만

예전에 덴마크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영토를 상실했으나, 잃은 땅을 안에서 되찾자는 달가스(Dalg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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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시기를 건너뛰고 오스만제국을 동경하는 에르도안은 로잔조약이 결정한 국경선을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한 적이 있다. 에르도안이 보기에 해양 자원을 개발하자니 그리스령 에게해 섬들이 눈에 거슬리고, 시리아 북부와 석유가 나오는 이라크 북부는 튀르키예 땅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로잔조약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튀르크인이 승리로 쟁취한 로잔조약의 국제질서를 건드리는 것은 상당히 무모한 짓이다.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보다 애국주의에 호소하면서 그리스•시리아•이라크•쿠르드족과 긴장을 고조시키고, 다시 이 긴장과 갈등을 악용•조장해서 자신의 인기를 높이겠다는 생각은 파멸의 지름길이다.

그런데 이미 튀르키예는 팽창 노선을 실행한 지 꽤 되었다. 쿠르드족 무장단체를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시리아 국경을 넘어 군대를 주둔시키고 군사작전을 하고 있다 (아래 지도). 과연 튀르키예에 있는 시리아 난민까지 이쪽에 정착시키면 정말 튀르키예 영토가 될까?


오스만제국은 죽었다. 튀르키예는 지금 영토만으로도 충분하다. 무스타파 케말이 그랬던 것처럼 튀르키예공화국은 중립과 현상 유지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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