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마을 딴 가족

🇦🇲🇹🇷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닥터 케디 2023. 4. 2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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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301년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공인한 나라로서 중앙아시아에서 말타고 온 튀르크 무슬림 정복자들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현재 이란, 터키,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땅에 살고 있었다.

오스만제국 안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은 상공업에서 활약했고, 오스만 황실 전용 사진사들도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았다. 별 문제 없이 무슬림들과 잘 어울려 살았다.

그런데 1894년과 1915년 오스만제국이 제국 내 아르메니아들을 탄압하는 일이 벌어졌다. 구체적으로 이슬람으로 강제 개종을 시키거나 시리아 사막까지 죽음의 행진을 시키거나 집단으로 학살하는 일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치의 차이는 있지만 1915년 사건으로만 약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죽었다.

대학살과 죽음의 행진 지도

마치 1923년 관동대지진, 1938년 스탈린이 연해주에 살던 우리 동포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킨다. 그 결과 아나톨리아 전역에 살았던 아르메니아인들은 그 숫자가 확 줄었다.


내가 살았던 집 뒷골목에는 아르메니아 교회가 있었고, 아직도 이스탄불에 아르메니아 기독교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다. 아르메니아계 터키 친구에게 물어보니 튀르키예에 4–10만 정도 아르메니아인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일이 2018년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사진작가 아라 귈레르(Ara Güler)가 죽었을 때다. 그누구보다도 이스탄불을 사랑했고, 그 일상을 사진에 담았던 예술가였다.

아라 귈레르
생전에 에르도안과 함께


에르도안부터 튀르키예 전체가 애도하는 가운데 초승달과 별이 그려진 국기가 그의 관을 덮었다. 그런데 장례식이 교회에서 치러졌다. 알고 보니 본명이 Aram Guleryan 아르메니아인이었다.

아라 귈레르 장례식


아무튼 4월 24일은 아르메니아인 학살(genocide) 추모의날이 되었다. 전세계로 흩어진 아르메니아인들이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과 관련해 튀르키예를 규탄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력 때문이었다. 아래 사진 초록색 지역이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인정한  나라들이다. 부정하는 빨간색은 형 튀르키예와 동생 아제르바이잔이다.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관해 튀르키예는 반대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튀르키예 외교부는 미국에게 역사왜곡하지 말라고 했고, 아래 국방부는 아르메니아 테러리스트들에게 살해당한 튀르크인들을 향한 추모글을 올렸다.

출처: 튀르키예 국방부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는 튀르키예•아제르바이잔 국기를 불태우고 행진하는 행사가 있었다.


두차례 대학살에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영토분쟁에서 튀르키예제 무인기 때문에 패배했으니 두 형제에 대한 아르메니아의 원한과 울분은 이해가 간다.
https://drkedy.tistory.com/m/26

🇹🇷🇦🇿 형제의 나라

많은 한국인은 튀르키예를 형제의 나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튀르키예는 어느 나라를 형제의 나라로 생각할까? 일단 튀르키예는 그 형제가 엄청 많다. 튀르크계 국가들과 무슬림 국가들은 거

drkedy.tistory.com


지금 이런 글은 쓸 수 있는 것은 내가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한복판에서 아르메니아 대학살 얘기를 꺼내면 총이나 칼이 몸에 박힐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그것이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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